결국 관객들이 제일 궁금한 것은 "재미있냐?"라는 질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봉준호 감독의 신작인 '미키17'은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인 동시에 '의미 있는 영화'다.
2054년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영화는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돼 끊임없이 가혹한 죽음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미키’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해 도착한 외계의 행성에서 16번의 죽음을 겪은 미키17이 우연찮은 계기로 살아남고, 이후 ‘미키 18’이 프린트돼 둘이 조우한 뒤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겁이 많고 지질한 성격으로 '루저'라 불리는 미키17과 달리 불같은 성격으로 역대 미키 중 '최강 또라이'란 수식어를 얻은 미키18의 충돌과 이기적이면서도 한없이 유약하고 어리석은 독재자의 횡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협력. 그리고 외계 행성 속 원주민과의 갈등 등 영화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흥미롭고 볼거리가 넘친다.
무엇보다 생사고락을 넘나들며 지독하게 가엾지만 동시에 '눈물 나게' 웃긴 미키의 성장 스토리를 보는 것 자체가 큰 관람 포인트다.
여기에 광활한 우주 밖 최첨단 과학 기술을 지닌 인류와 생전 처음 보는 외계 행성의 원주민 등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SF 장르의 외피를 띄고 있어 한층 더 눈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 또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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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17'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그러나 그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래왔듯, '미키17' 역시 단지 SF 영화만으로 단정 짓는 것은 어렵다.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다채로운 장르를 융합하며 자신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봉 감독은 수많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색깔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 매력을 더한다.
공상 과학이라는 선물 상자 속에는 사랑과 성장, 드라마와 블랙코미디, 액션과 유머 그리고 어드벤처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장르가 조화롭게 뒤섞인 가운데,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직선으로 뻗어나가며 137분 내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서사의 힘이 강한 덕분에 장르는 부차적인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 가운데 영화에 날개를 다는 것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로버트 패틴슨은 이번에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성격이 다른 미키17과 미키18, 두 명을 미키를 완벽하게 구현한 그의 폭발적인 연기력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생애 처음으로 악역 연기에 도전한 마크 러팔로 역시 독특하지만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독재자 역할을 보기 좋게 소화하며 극에 생동감을 더했다. 그의 아내 역할로 나온 토니 콜렛이나 미키의 연인 역할인 나오미 아키에, 그리고 친구인 스티븐 연까지.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 그 자체로 분해 영화의 화려하고 눈부신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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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17'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또 하나의 놓칠 수 없는 재미는 봉준호 감독이 심어놓은 메시지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매 작품 수많은 메시지를 날카롭지만 은은하게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봉 감독답게 이번에도 다양한 메시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화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에서 기인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시작으로, 위험의 외주화로 소외된 노동 계층의 반복되는 고통에 대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날 선 시각이 담겨있다.
여기에 인종주의를 위시하는 독재자와 그에게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이들에 대한 섬뜩한 경고, 타인에 대한 순도 높은 이해와 사랑이라는 행위와 감정이 갖는 의미 등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의 인장과 같은 다양한 주제 의식을 영화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봉 감독은 이를 그저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통해 넌지시 암시할 뿐 특정 메시지를 결코 강요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키17'는 관객에 따라 다양하고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지닌 작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의 이 같은 특징이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밋밋함으로 느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나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던 '기생충'보다도 더 큰 자극과 강렬한 파고를 원했던 이들에게는 '미키17'은 범작(凡作)이라는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영화 '미키17'. 봉준호 감독 연출.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아키에,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출연.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7분. 2025년 2월 28일 극장 개봉.
YTN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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