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persona)'. '가면'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로, 영화에서는 보통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대변하거나 상징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즉, 한 감독이 특정 배우와 반복적 또는 오랜 기간 작업할 경우, 우리는 그 배우를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특정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는 건 분명한 기대와 부담을 함께 갖게 되는 일이다. 좋은 쪽으로 먼저 생각해 보면, 함께 선보이는 작업물이 대중에게 더 높은 기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 이후 다시 작업을 함께 하게 되면, 검증된 조합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더 높은 관심과 기대 속에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반면 연출과 배우 입장에서 부담도 존재한다. 과거의 나와 비교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 함께 작업하는 이가 같더라도, 엄연히 다른 작품이기 때문에 더 나은 모습,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담을 내려놓고, 함께하는 이를 더욱 신뢰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과정 끝에 비로소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콘텐츠에서,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가 다시 만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각기 다른 감독들의 페르소나가 된 배우 박은빈, 구교환, 고아성이 대표적인 예다. 서로를 향한 믿음은 물론 자신 안의 새로운 연기 색채를 꺼내 보이려는 배우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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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초점] "다시 만난 필승조합"…박은빈·구교환·고아성,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배우들]()
ⓒ 넷플릭스
◆ 유인식 감독과 배우 박은빈…'우영우' 이후 '원더풀스'로 4년 만에 재회
신드롬급 인기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연배우 박은빈과 유인식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원더풀스'로 재회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지난 2022년 방송돼 당시 신생 채널이었던 ENA에서 최종회 시청률 17.5%를 기록하며 유일무이한 기록을 쓴 바 있는데, 이 기록을 함께 만든 배우와 감독이 '원더풀스'로 다시 뭉친 것.
'원더풀스'는 유인식 감독의 오랜 로망이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보고 히어로 흉내를 내본 기억이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감독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히어로물을 만들고자 했고, 이 프로젝트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 당시 박은빈에게 공개했다. 이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출연이 확정됐고, 오랜 준비 끝에 대중에게 공개하게 됐다.
박은빈은 '원더풀스' 공개 기념 인터뷰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처음 겪고 나서,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걸 몸소 크게 느꼈고, 이런 분과 함께라면 배우로서의 부담감을 일부분 내려놓고, 믿음으로 돌파해 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저에게는 등대 같은 분"이라고 설명하며 감독을 향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유인식 감독 역시 "박은빈이라면 이번에도 돌파구를 찾아서 은채니를 잘 보여주겠다 싶었다. 온갖 와이어를 다 달아야 했는데, 탁월하게 해내는 걸 보며 '이것도 되는구나' 싶었다. 또 조심성이 많은 배우이기도 한데, 주인공으로서 전체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는 자기관리가 철저했다"라며 작품 안팎에서 주연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준 박은빈의 면모를 칭찬했다.
극 중 해성시를 위협하는 '분더킨더'와, 이들에 맞서 마을을 지켜내려는 모지리 4인방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지만, 서사의 중심에 박은빈이 있었던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기구한 운명의 캐릭터였지만 박은빈은 자신만의 사랑스럽고 밝은 매력으로 '은채니'를 그려내면서 이 작품을 궁극적으로는 귀엽고 따뜻한 히어로물로 완성시켰다.
다시 만난 필승 조합이다. '원더풀스'는 공개 2주 차에 79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총 64개 국가에서 TOP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공개에 앞서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차은우가 탈세 의혹에 휘말려 공개 시기가 불투명해지는 등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예정했던 시기에 공개했으며 작품의 흥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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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EN, (주)쇼박스
◆ 연상호 감독과 배우 구교환…무려 네 번째 만남 '군체'
배우 구교환은 자타공인 연상호 감독의 페르소나다. 평범치 않은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 속에서 워낙 많은 작품을 했고, 이에 작품을 공개할 때마다 페르소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구교환은 영화 '반도', 시리즈물 '괴이', '기생수: 더 그레이'에 이어 지난 21일 극장 개봉한 신작 영화 '군체'로 연 감독과 무려 4번의 작업을 함께 한 배우다.
이번 '군체' 제작보고회에서도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연상호 감독은 "자유로운 배우"라며 "'반도'라는 작업을 하기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고, 친하기도 해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인데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장악하는 자의 연기란 무서운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구교환의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군체'를 보면 구교환이 뿜어내는 존재감과 예측불가한 연기가 굉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그는 극 중 메인 빌런으로 분류되는 서영철 역을 맡아 진화한 좀비를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기괴한 움직임과 표정 변화 등이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또한 대척점에 있는 전지현과 치열한 갈등 양상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재미를 높였다.
'군체'는 공개 5일 만에 관객 수 200만을 돌파하면서 흥행 청신호를 켰다. 이는 올해 개봉작 중 최단 속도다. 누적 관객 수 1,688만을 기록하며 신드롬급 인기몰이를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비롯해, 실제 '살목지'로 향하는 인파를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흥행한 공포영화 '살목지'의 기록을 모두 뛰어넘으면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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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EN
◆이종필 감독과 배우 고아성…'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어 '파반느'도 함께
배우 고아성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이어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를 통해 이종필 감독과 두 번의 작업을 함께 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2020년 먼저 공개된 작품이지만, 고아성이 무려 10년 전부터 '파반느'를 준비했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먼저 선보이게 됐다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긴 준비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고민과 섬세한 작업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파반느'는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 영화 4위에 오르는 등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고아성이 전형적인 멜로 여주인공의 모습 대신 체중 증량까지 감행하며 만들어낸 씩씩한 캐릭터의 모습과 단단한 연기가 시청자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고아성은 매체 인터뷰에서 "'파반느'의 시나리오는 학생 때 처음 읽었고, 세월이 흘러 이종필 감독님이 각색한 버전을 봤다. 감독님 작품 속 여성의 모습을 전적으로 믿었다. 멜로를 찍으면 든든하고 씩씩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었는데, '파반느'에서 이종필 감독님이 그런 장면을 만들어주셨고 덕분에 행복하게 연기했다"고 작업 과정에 대해 밝혔다.
이처럼 각기 다른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 하게 되는 배우들의 행보는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 요소이자 관전포인트로 작용한다. 최근 몇 년 사이 OTT가 대중화되면서 콘텐츠의 장르적 실험은 더욱 다양해지고, 그 한계 또한 모호해진 상황. 이 가운데 또 어떤 조합의 신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을지, 시청자들의 기대가 더욱 커지는 시점이다.
YTN star 강내리 (nr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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