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 페르소나인 '국민 배우' 안성기가 별세했다.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오늘(5일) 오전 9시께 안성기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해온 안성기는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암 재발이 확인됐다. 2020년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고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안성기는 아역배우를 시작으로 70년간 170편 넘게 작품에 출연하며 '영화계 대부'로 불렸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 씨의 친구였던 김기영 감독의 작품 '황혼열차'(1957)에 만 5살의 나이로 데뷔했다. 이후 1959년 다시 김기영 감독의 작품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이후 학업과 군대 생활로 공백기 10년을 보낸 안성기는 다시 배우의 길을 걸었다. 복귀 후 첫 작품은 '병사와 아가씨들'(1977)이었고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배우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연기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다.
구도자의 만행을 그린 '만다라'(1981), 빈민으로 나온 '꼬방동네 사람들'(1982), 거지 '민우'로 분한 '고래사냥'(1984), 후배 박중훈과 함께 한 '칠수와 만수'(1988) 등이 1980년대 안성기의 주요 출연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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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안성기의 최고 전성기였다.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한국 최고의 코미디 영화로 남은 '투캅스'(1993), '그대 안의 블루'(1992), '태백산맥'(1994), '퇴마록'(1998),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에서 입지를 굳혔다.
고인은 2000년대에도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펼친 '무사'(2001)로 첫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2003), 박중훈과 또 한 번 콤비를 이뤘던 '라디오스타'(2006) 등은 명작으로 꼽힌다.
'석궁 테러' 실화를 다룬 '부러진 화살'(2012), 한 남성의 연모 속에 인생과 사랑·죽음을 표현한 '화장'(2015)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 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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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에는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가 안성기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는 특별전을 열었다.
이를 기념해 열린 인터뷰에서 안성기는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국민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해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라며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국민 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고인은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 차례 받았다. 특히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그는 '기쁜 우리 젊은날'(1987)과 '하얀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2022년 '제5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공로상을 받았다. 영상으로 수상소감을 전한 안성기는 "오래오래 영화배우로 살면서 늙지 않을 줄 알았고 또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나이와 시간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 영화와 영화인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영광의 뿌리는 선배 영화인들이 심고 키운 것이다. 또 지금 탁월한 영화인들의 역량과 땀의 결과다. 영화와 영화인들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진심 어린 소감을 남겼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서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고,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YTN star 공영주 (gj920@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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