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기획사 하이브(HYBE)의 걸그룹치고, 르세라핌은 돌이켜보면 늘 처절했다. ‘소공녀’이기보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戰士)이길 원했다. 오죽하면 팀 이름도 ‘FEARLESS’를 새로 조합해 만든 애너그램이었을까.
완벽을 당연하게 여기는 K-POP 시스템 안에서 매번 자신들을 증명해야 했기에 르세라핌은 ‘FEARLESS’의 당당함, ‘ANTIFRAGILE’의 독기, ‘UNFORGIVEN’의 저항을 내세워 절박함의 서사를 완성했다.
그리고 2025년 10월, 이 절박함이 처음으로 웃음으로 승화됐다. 르세라핌의 신곡 ‘SPAGHETTI’에서 이들은 진지함 대신 유머로 무장했다. “이빨 사이에 낀 스파게티”라는 가사, 재래시장에서 찍은 안무 영상, 장난스러운 퍼포먼스. 이 모든 요소는 강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던 팀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비틀어 버린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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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초점] 르세라핌, ‘FEARLESS’의 자기최면·‘SPAGHETTI’의 자기확신]()
이런 변화에 성적도 나쁘지 않은 대답을 내놨다. ‘SPAGHETTI’는 발매 첫날(10월 24일) 멜론 일간 차트 86위로 진입해, 10월 28일 29위, 10월 30일 20위, 11월 3일에는 7위까지 상승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터졌다.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는 50위로 진입하며 팀의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글로벌(Excl. U.S)’ 24위,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32위에 올랐다. 유튜브 공식 뮤직비디오는 공개 10일 만에 조회수 2,400만 회를 돌파했고, ‘스파게티 챌린지’는 틱톡에서 1억 뷰를 넘겼다.
르세라핌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데뷔 이래 늘 ‘강함’을 키워드로 삼은 그룹이다. ‘FEARLESS’가 불안에 맞서는 자기 주문이었다면, ‘ANTIFRAGILE’은 상처 속에서 단단해지는 서사였다. ‘UNFORGIVEN’은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노래했다.
그리고 신곡 ‘SPAGHETTI’에 이르러 그들의 메시지가 달라졌다. 앞선 곡들이 “우리에게 두려움 따위 없어”의 자기최면이었다면, 이제는 “그래서 어쩌라고?”로 변화한 것이다. 이제 르세라핌은 증명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를 선언한다.
‘SPAGHETTI’ 뮤직비디오는 이런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시각화한다. 거대한 식탁과 과장된 음식 오브제, 스파게티 면과 소스가 뒤섞인 연출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린다. 멤버들은 카메라를 향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퍼포먼스를 이어가며, “우린 이미 잊히지 않을 존재”라는 메시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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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초점] 르세라핌, ‘FEARLESS’의 자기최면·‘SPAGHETTI’의 자기확신]()
국내 반응도 르세라핌의 이 같은 변화를 의아해하면서도 반기는 분위기다. 초기에는 “왜 이런 가사인가”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무대 공개 후 “무리하게 센 척을 하는 것보단 가벼워져서 더 멋있다”, “르세라핌이 편하게 힘을 풀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르세라핌은 이번 활동을 통해 기존의 진지함을 벗어던졌다. 하지만 그 안에 더 단단한 자존감이 자리해 있다. ‘SPAGHETTI’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르세라핌의 히트곡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확신을 보여준 한 장면이다.
이제 르세라핌의 서사는 ‘두려움을 모르는 자’의 서사를 넘어, ‘두려워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자’의 이야기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YTN star 곽현수 (abroa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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