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의 핵심 구절 중 하나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구절로 경쟁사와 업계 동향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업무다. 하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하이브(HYBE)의 내부 문건 '하이브 음악산업 리포트'는 이러한 경쟁사 분석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 종합 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하이브 임원 열람용 문건인 ‘하이브 음악산업 리포트’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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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건에는 하이브의 경쟁사인 SM, YG, JYP 소속 아티스트들의 외모 품평, 음악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한편, 중소 기획사 아이돌에 대한 평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는 경쟁사가 준비 중인 신인 걸그룹에 대해 “놀랍도록 못생겼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모 기획사 걸그룹의 퍼포먼스를 두고 “대학교 동아리 수준”이라고 깎아내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모 연예인의 유기동물 단체 기부를 “트위터 친화적인 초이스”라고 비꼬는 뉘앙스의 문장, 모 그룹 멤버의 탈퇴와 관련해 확실하지 않은 내부 분쟁 루머까지 실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는 국정감사 도중 “해당 문건은 외부로 유출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가 국회의 질타를 받았고, 이후 “담당 직원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회사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수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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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이 문건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게시물이 아니라 ‘임원 열람용’ 보고서였다는 점이다. 하이브는 여러 레이블을 거느린 멀티 레이블 체제를 표방하지만, 실상 중요한 결정은 임원 회의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경직된 의사 결정 구조와 낮은 자율성에 실망하여 하이브를 떠나는 직원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살펴보면 ‘음악 산업 리포트’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문서를 작성한 것도, 이를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임원들이 진지하게 열람하고 지금까지 보관해 놓은 것도 가관이다.
이에 대해 한 가요 관계자는 “그동안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기획사에 근무한 지난 경험을 떠올려 봐도 저런 형식의 문건을 작성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며 “신곡이 발표되거나 신인이 데뷔하면 현재 여론이 이렇다 정도의 구두 보고는 해도 문서화를 해 놓지는 않는다”고 이번 하이브 문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미 하이브는 민희진, 뉴진스와 대립각을 세우고 아이돌 팬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아티스트는 좋은데 하이브 소속이라서 좋아할 수가 없다’는 매우 위험한 목소리마저 나온다.
지금 하이브가 디시인사이드, 더쿠 등 온갖 커뮤니티를 뒤져가며 다른 회사 아티스트 흠이나 잡을 때인가? 어디선가 영화 ‘친절한 금자 씨’ 속 “너나 잘하세요”라는 일침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YTN 곽현수 (abroa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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