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영화 '가능한 사랑'은 십계명 속 한 구절을 스크린에 띄우며, 결코 섞일 것 같지 않은 두 세계를 한 공간으로 불러 모은다.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해고 노동자 부부(설경구·전도연)와 이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담으려는 감독 예지(조여정 분), 그리고 태생부터 계급이 다른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 분). 영화는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렌즈에 담는 창작자의 딜레마, 다정함 속에 배어있는 자본가의 은밀한 우월감과 오만함, 그리고 거대한 힘에 정의와 신념이 짓밟힌 개인의 무너진 자아까지 삶의 다층적인 민낯을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게 응시한다.
미옥은 저녁 메뉴와 옷차림을 고민하는 소박한 인물이다. 카메라 앞에서 감출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는 티 없는 순수함을 가졌다. 그는 자신과 너무 다른 예지 부부와 가까워지는 것에 기쁨과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반면 호석의 내면은 파업의 실패와 후유증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다 죽일 것 같다"는 그의 위태로운 말처럼, 심장이 썩어 문드러진 그는 삶의 이유를 잃고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들에게 다가가는 예지의 태도는 극에 묘한 아이러니를 불어넣는다. 노동의 가치를 묻고 피사체와 진심으로 교감하려 노력한다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된다. 결국 그렇게 아슬아슬한 선을 탄다. 자신의 이야기에는 카메라를 끄면서 타인의 상처는 집요하게 프레임에 담으려 하고,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영화를 찍는다면서도 수백만 원짜리 명품과 외제차를 향유한다. 예지가 보여주는 친절이 남편 상우의 말처럼 어쩌면 스스로조차 속이는 '메소드 연기'처럼 보이는 이유다.
누구보다 여유롭고 젠틀해보이는 예지의 남편 상우도 다르지 않다. 상속된 자본에서 벗어나 짐짓 우아하고 고결한 척하지만, 눈앞에 있는 타인의 상처보다 자신을 '다른 차원'으로 올려줄 자본주의적 계약을 우선시한다. 자본이 남긴 상처로 무너진 이를 앞에 두고, 자신의 자본을 불리기 위해 휴대폰만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 그 역시 가면을 벗어던지고 짐승처럼 추악하고 야만적인 본능을 드러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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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고통마저 탐하는 위선과 상실의 시대, 그럼에도]()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이처럼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네 배우의 앙상블을 통해 완벽하게 관객을 극으로 끌어 당긴다.
전도연은 대사의 톤과 호흡, 작은 눈빛, 표정 그 무엇조차 결코 낭비하지 않는 경이로운 연기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왜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얼굴인지,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여실히 증명해낸다.
설경구는 짓밟힌 자의 뒤틀린 분노를 전에 없던 서늘한 얼굴로 탁월하게 그려내며 자신의 인장을 새긴다. 조여정과 조인성 역시 이창동의 거대한 도화지 위에서 각자의 몫을 훌륭히 소화하며 극의 밀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앞서 이창동 감독은 '박하사탕'을 통해 순수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밀양'으로는 구원을, '시'에서는 도덕과 양심을, '버닝'에서는 청춘의 희망과 분노를 이야기한 바 있다. 이렇게 근원적 감정에 대해 탐구해온 감독은 '가능한 사랑'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와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계급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이 과연 가능한지 묻는다. 앞서 모든 작품이 그러했듯 감독은 이번에도 값싼 위로나 섣부른 해피엔딩으로 서둘러 인물 간 갈등과 사건을 봉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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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고통마저 탐하는 위선과 상실의 시대, 그럼에도]()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도덕적 딜레마와 인간의 이중성, 실체를 알 수 없는 세계의 모호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묵직한 질문의 무게를 온전히 관객에게 던져둔다.
'가능한 사랑'은 관객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해고 노동자의 비애로, 누군가에게는 창작자의 윤리로, 또 누군가에게는 자본주의의 민낯으로, 누군가에게는 우정과 사랑으로 읽힐 이 다층적인 이야기다.
얄팍한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심연과 같은 인간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만들면서도, 끝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타인의 고통마저 탐하는 잔혹한 위선의 시대, 이창동은 기어코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가'라며 '가능한 사랑'을 묻고야 만다.
때문에 극장을 나선 뒤에도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오래도록 회자될 이번 영화는 이창동이라는 세계의 새로운 시작점처럼 느껴진다.
영화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연출. 배우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출연. 러닝타임 164분. 청소년 관람불가. 2026년 9월 23일 극장 개봉. 2026년 11월 6일 넷플릭스 공개.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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