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 처음 마주한 '동궁'의 대본은 배우 남주혁의 상상력을 먼저 자극했다. 화려한 귀의 세계와 궁궐이라는 익숙한 공간,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구천이라는 인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끌었다.
"글을 읽었을 때 상상만으로도 귀의 세계가 주는 이미지들이 너무 화려해서 과연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될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궁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천이라는 인물이 궁 안에 들어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남주혁은 궁과 어울리지 않는 구천의 특성을 연기에도 적극적으로 녹여내고자 했다. 특별한 능력이나 화려한 액션보다 먼저,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감정의 출발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이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구천이라는 인물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둔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캐릭터를 구축할 때 외로움을 중심에 두고, 그 감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사건과 개인적인 감정들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사람들과 담을 쌓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쩌면 귀의 세계라는 공간이 구천에게는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천과 생강의 말투가 정통 사극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남주혁은 전형적인 사극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 자체가 저희 작품을 많이 봐주셨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애초에 구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궁궐이라는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설정상 왕족이나 궁의 법도를 전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절에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자'는 마음으로 궁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행동이나 말투도 더 자유롭게 가져갔습니다. 만약 구천이 전형적인 사극 말투를 썼다면 오히려 인물의 자유롭고 다양한 매력이 반감됐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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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허투루 연기하지 않는 배우이고 싶다"…남주혁,]()
생강 역의 노윤서와는 극의 상당 부분을 함께했다. 일부 시청자는 구천과 생강이 서로를 의지해 가는 과정에서 로맨스의 기류를 읽기도 했다. 그러나 남주혁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생사를 함께 넘는 '전우애'로 설정했다.
"처음에는 두 인물이 서로 호흡이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쪽은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고, 구천은 해결은 해야 하지만 너무 하기 싫어하면서도 준비는 다 해두는 식이죠. 이런 모습들을 디테일하게 쌓기 위해 사전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애초에 전우애로만 접근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로맨스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전우애로 접근하더라도 보시는 분들에 따라 자연스럽게 로맨스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잘 맞지 않는 전우였다가 점차 전우애가 생기면서, 같은 임무를 해결해 나가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표현했습니다."
구천은 홀로 귀의 세계를 누비는 장면이 많았던 만큼 조승우, 장영남 등 선배 배우들과 함께하는 신은 예상보다 적었다. 그래서 남주혁에게는 그 짧은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남았다.
"저 같은 경우에는 귀의 세계라는, 혼자 가야 하는 공간에서의 비중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그 짧은 순간순간이 너무나 소중했어요. 자연스럽게 마음 한켠에는 '더 많은 신을 함께하고 싶다', '선배님들과 연기 호흡을 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그 아쉬움은 마지막 촬영을 마친 뒤 조승우에게 남긴 편지에도 담겼다. 남주혁은 "다음에는 선배님과 더 많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작품에서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답장 내용에 대해서는 "꼭 다시 함께하자고 해주셨고, '이번에 너무 고생 많았고 힘든 티 내지 않고 끝까지 잘 해내줘서 정말 대견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맛있는 것도 사주겠다고 하셨습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후반부 세자 역의 곽동연과 맞붙는 장면은 '동궁'의 주요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그는 함께 고생한 동료를 떠올리며, 입대를 앞둔 곽동연에게 먼저 군 생활을 마친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도 건넸다.
"동연 배우와 호흡을 맞춘 신은 짧았지만 무더운 여름에 분장도 많이 하고 옷도 여러 겹 입어야 해서 모두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눈만 봐도 '정말 고생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선임들에게 사랑받기보다 나중에 후임들에게 사랑을 주는 군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몸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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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허투루 연기하지 않는 배우이고 싶다"…남주혁,]()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귀의 세계를 상상하며 연기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제작진 역시 배우들이 빠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CG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당 부분을 실제 세트로 구현했다.
"다행히 저는 상상하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 속 영화 같은 인게임 연출 영상에 익숙했기 때문에 귀의 세계라는 가상 공간을 받아들이는 게 편했어요. 배우들이 귀의 세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제작진이 미술적인 완성도를 굉장히 높여두셨습니다. 물에 들어가는 장면도 그렇고, 액션 신의 대부분은 배경을 제외한 세팅이 실제로 완성돼 있었어요. 별감 귀신이나 십삼궁녀와의 액션 신도 CG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스태프분들이 사전에 정말 많은 공을 들여주신 덕분에 지금처럼 훌륭한 귀의 세계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동궁'의 마스코트로 거론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귀매 캐릭터 꺼먹살이는 촬영 후 CG로 완성되는 캐릭터였다. 현장에는 임시 모형이 있었지만 실제 촬영이 시작되면 이를 치운 상태에서 연기해야 했다.
"꺼먹살이가 인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저는 사실 이 친구가 잘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첫 연기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를 많이 얻으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고요. (웃음) 촬영 직전까지 임시 모형을 아주 오래 바라봤습니다. 대상이 없어도 마치 같이 공존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니까요. '이쯤 어깨에 올라오겠구나', '얼굴은 이쯤 있겠구나'를 계속 떠올리며 저만의 꺼먹살이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구천이 양기를 빼앗기며 점차 피폐해지는 모습은 외형의 변화로도 표현했다. 촬영 초반 84~85kg이던 체중은 후반부 78kg까지 줄였다.
"점점 양기를 잃어가는 설정에 맞춰 마지막에는 78kg 정도까지 자연스럽게 감량됐습니다. 촬영 순서가 완전히 이어지진 않았지만 극의 흐름에 맞춰 체중이 자연스럽게 빠지는 모습이 화면에도 잘 담긴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수중 액션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감정 연기까지 소화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촬영에 사용된 수중 세트는 깊이가 6m에 달했고, 실제로 3~4m까지 내려가야 했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정말 무서웠어요. 그 안에서 구천의 감정까지 표현해야 했거든요. 다행히 제작진이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주셔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촬영 당시에는 약간의 물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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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허투루 연기하지 않는 배우이고 싶다"…남주혁,]()
'동궁'은 남주혁이 군 복무를 마친 뒤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군 생활 동안 그는 지난 10년의 연기 인생과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아직 구체적인 목표를 찾는 과정이지만, 배우로서는 작품 전체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연기를 고민하고 있었다.
"20대 내내 10년 뒤의 나를 찾겠다는 목표로 연기하며 살아왔습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지난 10년을 많이 돌아봤어요. 연기적으로나 삶으로나 '내가 목표했던 바를 충분히 이뤘는가'를 생각해봤는데 아주 만족스럽지도, 그렇다고 불만족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왔구나' 정도였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아직 찾는 중입니다. 배우로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건 당연한 목표이고, 매 작품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로 작품 전체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지, 또 그러기 위해 제가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입대 전 불거졌던 개인적인 논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과정인 만큼 감정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겠다는 입장이었다.
"제 개인적인 일 때문에 '동궁'이라는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구천이라는 캐릭터와 '동궁'이라는 작품을 잘 만들어내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뿐이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법원에서 1차 판결이 나왔고, 현재도 사실관계를 바로잡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은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께 재미와 즐거움을 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 작품을 거치며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캐릭터의 환경과 직업에 스스로 한계를 두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요즘은 '더 자유롭게, 더 잘 놀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역할의 직업이나 환경 때문에 스스로 표현의 범위를 제한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여러 인물을 만들어보고 훌륭한 선배님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연기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동궁'을 통해 남주혁이 얻고 싶은 평가는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었다. 보이는 순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라는 믿음을 남기고 싶었다.
"'허투루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티가 나든 나지 않든 작품을 위해 늘 진심을 다하고, 절대 대충 연기하지 않는 배우라는 생각을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YTN star 최보란 (ran61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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