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만 번의 끼니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만, 만약 그 횟수가 눈앞에 선명한 숫자로 기록된다면 그 식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영화 '넘버원'은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줄어들고 숫자가 다하면 결국 엄마는 죽는다'는 서늘한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가장 일상적인 행위인 식사가 사실은 사랑하는 이의 생명력을 조금씩 나눠 받는 숭고하고도 비극적인 과정임을 역설한다.
영화의 문을 여는 것은 2010년, 형의 사고사와 함께 하민(최우식 분)의 눈앞에 나타난 숫자 '365'다. 엄마(장혜진 분)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이 잔인한 카운트다운은 하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엄마를 떠나야 한다는 역설은, 하민을 늘 쫓기는 듯한 불안 속에 살게 한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어느덧 '138'까지 줄어든 숫자는 하민에게 사랑이란 곧 상실을 향한 전진이라는 공포를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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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최우식의]()
영화 '넘버원' 포스터 ⓒ바이포엠스튜디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엄마의 췌장 수술 날이다. 엄마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엄마의 밥을 먹어야만 하는 하민의 일그러진 얼굴은 이 영화의 정서적 핵이다. 숫자가 '120'에서 '119'로 바뀌는 순간 느끼는 안도와 공포의 공존은, 비뚤어진 말로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하민의 방어기제로 이어진다. "엄마 밥 먹으면 죽을 것 같냐"는 엄마의 오해와 "평생 이 불안을 아느냐"는 하민의 외침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다른 궤적을 그리며 엇갈릴 수 있는지를 아프게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 아버지와 같은 병을 얻게 된 하민이 "결국 내가 죽어야 끝나는 일이었을까"라고 읊조리는 순간, 영화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사라져야 엄마의 숫자가 멈출 것이라 믿는 하민의 선택은 무겁고도 처절하다.
하지만 영화는 하민이 수술을 결심하고 엄마의 레시피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치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수동적으로 '받아먹던' 아들이 비로소 엄마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는 모습은 아들이 비로소 능동적으로 '먹이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두 사람이 나눴던 수많은 식사가 결국 용서와 화해의 과정이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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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최우식의]()
영화 '넘버원'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판타지라는 외피를 입고 있음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열연 덕분이다.
최우식은 쫓기는 자의 불안함과 시한부의 담담함을 과장 없이 그려내며, 관객을 하민의 감정선에 온전히 동기화시킨다. 장혜진은 특유의 생활 밀착형 연기로 엄마라는 존재의 층위를 두텁게 쌓아 올렸고,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는 '기생충' 이후 7년의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 깊고 진하다. 공승연 역시 결핍을 가진 인물로서 극의 현실적인 긴장감을 훌륭하게 지탱한다.
좋은 서사의 조건이 '익숙한 상황 속의 낯선 사건'이라면, '넘버원'은 그 정석을 따르면서도 감정의 밀도를 놓치지 않는다. 영화는 자극적인 볼거리 없이도 밥을 먹고 나누는 평범한 풍경만으로 관객의 눈시울을 붉힌다. 방향은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인 모성애와 효심, 그 두 사랑이 부딪히고 수렴하는 과정은 우리가 잊고 지낸 관계의 가치를 일깨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문득 궁금해진다. 내 눈앞에 놓인 식탁 위 숫자는 지금 몇을 가리키고 있을지, 그리고 나는 그 소중한 한 끼를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나누고 있는지 말이다.
영화 '넘버원'. 김태용 감독 연출. 배우 최우식, 장혜진, 공승연 출연. 러닝타임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2026년 2월 11일 극장 개봉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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