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시장이 현재 산업의 한 분야로 성장하게 된 데는 이 시장을 끊임없이 소비해 온 팬덤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이제 단순히 가수를 응원하는 행위에만 그치지 않고 2차 콘텐츠를 만드는가 하면, 팬덤의 이름으로 사회적 기부를 하는 등 전면에 나서 K팝 시장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팬덤의 규모와 그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부정적인 측면도 뒤따라온다. 일부 악성 팬덤은 아티스트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소속사 임직원에 대한 사생활 침해, 사이버 테러, 개인정보 유출 등 도를 넘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K팝 아이돌과 소속사 임직원이 비슷한 유형의 피해를 입어도 이에 대한 대응이 천지차이라는 점이다. 소속사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악성 댓글 및 루머 피해를 입으면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서지만, 소속사 임직원이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애써 고개를 돌릴 뿐이다.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도 ‘뼈아픈 성장통’ 정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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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테러
사례 1. 모 엔터테인먼트에 근무 중인 A씨는 늦은 밤 익명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잠에서 깨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헤어스타일, 코디를 바꾸라는 욕설과 폭언이었다.
사례 2. B씨는 한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개인 SNS 계정에 팬들이 찾아와 악성 댓글을 달고, 심지어 B씨의 친구들까지 팔로우해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 댓글을 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사례 3. C씨는 한 중소 기획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팬들이 회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고,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과격한 방식으로 항의를 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악성 댓글 및 인신공격
사례 4. D씨는 한 기획사의 영상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콘텐츠에 대해 팬들이 "멤버들의 콘셉트에 맞지 않는 자막이나 BGM을 넣었다"며 악성 댓글을 다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D씨는 "팬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콘텐츠를 제작하지만, 모든 팬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며 "지나친 비난은 창작 의욕을 꺾는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사례 5. 모 기획사에 근무 중인 E씨는 아티스트의 열애설을 인정하고 나서 팬들의 항의에 시달렸다. E씨는 "회사의 입장과 멤버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한 사항"이라며 팬들의 지나친 억측에 기반한 항의 전화와 메일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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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magen3
이 외에도 공개 방송 중 팬덤의 안전을 책임지는 팬 매니저가 팬들과 친목을 한다며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경우, 소속사 임직원에게 퇴사를 종용하거나 가족의 신변마저 언급하는 메일 폭탄이 쏟아지는 경우 등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피해 사례가 발견됐다
한 엔터사 관계자는 "규모가 있는 대형 기획사의 경우에는 홈페이지나 팬들의 불만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팀이 따로 존재하지만, 중소 기획사의 경우에는 팬덤과 직접 소통을 해야 한다. 대표 번호로 전화를 하거나 개인 번호를 온라인 커뮤니티상에 유출해 좌표를 찍어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속사들은 막상 팬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그들의 보복성 행동, 회사의 이미지 실추 가능성을 우려해 법적 대응에 소극적이다. 선종문 변호사는 "일부 엔터사 대표들이 직원이 피해를 입어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정말 극히 일부다. 결국 피해를 입은 개인이 스스로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같은 피해로 인한 소속사 직원들의 멘탈 케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과거 팬덤에게 지나치게 시달린 직원이 힘들어하자 대표님이 '네가 원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국내 엔터사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고충을 전했다.
이처럼 현재 K팝의 위상과는 달리 소속사 직원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법적 지원, 정신 건강 관리 등 미비된 제도는 추후 논의하더라도 팬덤이 생각하는 '정당하고 평화로운 비판'이 과연 실제로도 정당하고 평화로운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당신의 아티스트가 소중한 만큼, 소속사 직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눈앞의 '최애'만 보이는 맹목적인 사랑은 결국 '갑질'이라는 낙인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K팝이 세계적인 문화로 발돋움한 지금, 그 위상에 걸맞은 성숙한 팬덤 문화가 절실하다. 맹목적인 '팬심'이 아닌 이성적인 '팬심'으로, 당신의 아티스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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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곽현수 (abroa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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