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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꽃피는 봄이 오면'...지금도 풍자 코미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레전드 코너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고(故) 김형곤이 만들고 이끌었다는 것.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김형곤은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에 과감한 시사 풍자 코미디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90년대 이후에는 아예 정치에 입문, 자민련의 명예총재특별보좌역을 역임하는가하면 2002년 16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형곤의 거침없는 시사개그와 풍자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외압으로 방송 활동에 어려움을 겪기도. 그와 '탱자 가라사대'를 함께 했던 이성미는 방송에서 "당시 녹화를 하고도 방송에 못 나간 것이 정말 많았다. 시사 코미디다 보니 위에서 검열이 내려와 '하지 말라' 한 적도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형곤의 풍자 코미디는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는 회장으로 등장해 회사 임원들과 대화 속에서 재벌 풍자를 선보였고,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는 왕초와 거지들로, '탱자가라사대'에서도 스승과 제자로 바뀔 뿐 이야기 속에서 시사 이슈를 녹여내는 방법이 같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는 상류층으로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는 하위층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봤다는 점에서 다른 재미가 있었다. '탱자 가라사대'는 '탱자'라는 성인 캐릭터를 통해 한 발 더 나아가 '무관심', '수능', '매너', '신고 정신' 등 포괄적인 개념으로까지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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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공자'를 연상케 하는 '꽁자 가라사대'로 시작했으나, 이후에는 춘추전국 시대 노나라 탱자 나무 그늘에서 도를 얻었다는 '탱자'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었다. 선문답 같은 제자들과 강론 구조였기에 그간 코미디에서는 쉽게 다루지 못한 사회규범이나 문화, 세태와 관련해서도 이야기로 풀어냈다. 풍자의 범위를 한층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성미 하상훈 김용 조문식 등 후배 코미디언들이 인자, 고자, 이자, 한자 등 '자'자로 끝나는 이름의 제자로 출연했다. 코너는 대체로 시끌시끌한 제자들의 말다툼으로 시작 되는데,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고 우기거나 서로의 지식을 자랑하는 과정에서 개성을 드러내 캐릭터를 구축했다. 특히 열등생인 양자 역의 오재미는 똑똑한 제자들 사이에서 엉뚱함으로 존재감을 뽐내곤 했다.
제자들이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면 탱자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듯하다가 생뚱맞은 답변으로 반전을 안겼다. 예를 들어 제자들이 "물가 상승률이 너무 높다"고 지적하면 "물가가 높아서 익사하는 사람이 많다"거나 "우루과이 라운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말에 "권투 경기 라운드걸을 우루과이 여성만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등의 말장난으로 쉽고 재미있게 시사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하지만 말장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이 웃고 방심할 때 김형곤은 "탱자 가라사대!"를 외치며 교훈을 남겼다. 예를 들러 '매너' 편에서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학식이나 덕행이 아닌 예의범절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계층에 관계없이 무례함이 상식처럼 통하고 있다. 병이 전염되는 것 같이 예의도 사람이 이를 보고 따라 배우게 돼 있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못 살고 사람은 예의가 없으면 못 산다는 것을 그대들이여 아느냐 모르느냐"는 마무리로 시청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김형곤은 이 코너에서 국내외 격언이나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산문, 만화, 시집을 섭렵하며 소재개발에 힘썼다는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KBS '한바탕 웃음으로'의 레전드 코너 '봉숭아 학당' 또한 처음엔 풍자 코너로 시작했는데, 김형곤이 작가 없이 직접 스토리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YTN Star 최보란 기자 (ran613@ytnplus.co.kr)
[사진제공 = KBS '유머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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